“입주 코앞인데 어쩌나”…지방 건설사 이미 ‘쑥대밭’

부동산 경기 침체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 실패로 중소 건설사가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있다. 한 중견 건설사가 지난해 6월 유동성 위기로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서울 서초구 주상복합아파트 부지와 건물은 공매로 넘어갔다. 공정률 45%에서 작업이 멈춰 선 공사 현장. 김범준 기자

전북 익산시 중앙동에 짓는 민간 임대아파트 ‘유은센텀시티’는 작년 8월부터 공사가 멈춰서면서 130여 명의 입주 예정자가 발을 구르고 있다. 호남 지역 기반 건설사인 거송건설이 작년 하반기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시행사 더유은도 자금난에 빠졌기 때문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 2일 뒤늦게 보증사고 현장으로 분류했다. 업계에서는 밀린 하도급 대금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문제로 입주 예정 시기를 가늠할 수 없다고 우려한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후 지방 중소형 건설사가 무너지면서 주택을 공급하는 건설산업 생태계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건축설계, 중개업소, 도배 업체 등 건설 관련 업종도 역대급 불황에 허덕이고 있다.

올해 들어 이달 21일까지 문을 닫은 종합·전문건설사(국토교통부 건설산업지식정보시스템 기준)는 전국에서 255곳이다. 지난해는 2347곳이 폐업해 10년 사이 가장 많았다. 약 2만 개 종합건설사 중 지난해 부도가 난 곳은 22개로, 2022년(14개)보다 50% 늘었다.

악성 미분양이 중소형 건설사를 옥죄는 걸림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11월 기준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8554가구로, 1년 전(7165가구)에 비해 19.39% 늘었다.

입주 예정 단지도 부동산 경기 침체와 건설사 유동성 위기로 직격탄을 맞았다. 최근 준공한 충남 천안의 한 아파트 입주민은 단지 앞에 걸린 유치권 현수막 때문에 불안에 떨고 있다.

가구·건자재 업체 실적도 고꾸라지고 있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30~40년간 이런 위기는 없었다”며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돌 정도”라고 했다.

PF 대출금리 연 10% 웃도는데 미분양 지속으로 자금회수 불발
협력업체들 폐업·부도 현실화

광주광역시에 본사를 둔 한국건설은 시공 중인 아파트·오피스텔 계약자에게 약속한 ‘중도금 무이자’ 조건을 최근 지키지 못했다. 계속되는 경기 침체와 고금리로 중도금 이자 대납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계약자들은 뒤늦게 대출 실행 은행으로부터 이자 납입 독촉을 받고 나서야 사실을 알았다. 한국건설은 광주에서만 22곳의 신축 공사 현장을 맡고 있다. 연쇄 부실 우려가 나오자 광주시가 대책 마련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등으로 중소형 건설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사업 진행을 위한 대출 금리가 연 10%를 웃도는 데다 미분양 지속으로 자금 회수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어서다. 중소 건설사의 유동성 위기로 협력업체 폐업·부도가 현실화하고 있다. 새해 종합건설사 4곳 법정관리
22일 법원 공고 등에 따르면 작년 4분기에만 건설사 10곳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올해도 채 보름이 안 돼 부산 기반 부강종합건설을 비롯한 건설사 4곳이 법정관리 신청 후 포괄적 금지명령을 받았다. 자금 동원 능력이 약한 지방 건설업계가 먼저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지방 건설사의 부도 등으로 현장이 멈추거나 새 시공사를 찾는 사업장이 늘고 있다. 울산 울주군의 온양발리 신일해피트리와 부산 사상구의 경보센트리안3차 등이 대표적이다. 충남에서도 논산과 천안에서 보증사고가 이어졌고, 전북에선 ‘남중동 라포엠’, 전남에선 ‘율촌 디아이뎀’ 현장이 멈췄다.

입주를 앞둔 계약자의 피해도 커지고 있다. 30가구 이상 아파트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임대보증에 가입해야 한다. 지난해 발생한 보증사고만 15건, 사고액은 9446억원에 달한다. 2021년과 2022년에는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HUG 분양보증이 선택 사항인 오피스텔 등 비아파트 사업장에서 시공사에 문제가 생기면 분양계약자나 조합원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보증 이행 절차에 오랜 시간이 걸려 입주 지연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방 미분양 ‘뇌관’

고금리 장기화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미분양이 증가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이달 경북 울진에서 공급된 ‘후포 라온하이츠’(총 60가구)는 청약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지난 16일 전북 익산 ‘익산 피렌체’(92가구) 1순위 청약에는 1명만 신청했다. 빌라 오피스텔 도시형생활주택 등 비아파트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달 초 충남 천안에서 분양한 도시형생활주택 ‘마인하임’(83가구)에는 1명만 청약했다.

지난해 11월 기준 ‘준공 후 미분양’은 1만465가구로 작년 초(7546가구)에 비해 38.7% 불어났다. 정부가 지난 10일 ‘1·10 대책’을 통해 지방의 ‘준공 후 미분양’과 전국 전용면적 60㎡ 이하 소형 비아파트를 주택 수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효과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준공된 지방 미분양 아파트와 내년까지 완공될 예정인 오피스텔 등만 세제 혜택을 받게 된다”며 “현재 공사나 분양이 진행 중인 곳은 제외되는 등 세제 혜택 대상이 좁다”고 지적했다.

건설업계 PF 정상화를 위해 지난해 7월 출범한 정부 플랫폼(1조1050억원 규모)도 아직 성과가 없다. 자산관리공사(캠코)의 ‘부동산 PF 사업장 정상화 지원 플랫폼’에 등록된 전국 80여 개 부실 우려 사업장 중 새 주인을 찾은 곳은 하나도 없다. 사업장 매각을 두고 운용사와 대주단이 합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돈을 푼다는 대책만 내놓고 현장에서 사업장 정리는 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금 공급 지원 역시 대출회사에서 막혀 실제 효과는 미미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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